<금주의 시>저 강, 붓다의 침묵-이영춘

저 강, 붓다의 침묵

이영춘

저 강물 속에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돌기 하나
누구의 영혼 한 조각 이슬방울로 떠도는 편재遍在인가
편재의 그 넋으로 침묵에 이르는 지상의 주재자 그대,
강물 일렁이는 저문 강 창가에 등 기대고 서서 나는
내, 가는 길을 그대에게 묻는다

장원의 숲속에서 한 때 방탕하였던 그대 업보의 흔적,
그 천형의 흔적, 붉은 화인 등줄기에 꾹꾹 찍으며
그대는 도의 길, 무위자연의 공空으로 이르는가

얼마쯤 더 가야 그대의 가슴 저 밑바닥에 닿을 수 있을까
보리수 고행의 열매, 브하가비띠*의 적멸로 뚝뚝 흐르는데
나는 이 쪽 강 하구에서
이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붉은 죄수의 쇠사슬 목에 걸고
절름절름 세상 길을 가고 있다

붓다여! 그대 잠들지 못하는 불기둥 침묵의 돌기 하나
동방의 강 하류 어느 억겁의 중간쯤에서
그대 돌아갈 무위자연의 긴 강, 그 푸른 심장에
나는 매일 밤 그대 등 뒤에 서서 촛불 한 자루씩 불사르며
슈냐*로 가는 길을 묻고 있다

*브라가비띠=산스크리트어‘성스러움’의 뜻
*슈냐(sunya)=불교경전에서 ‘空’의 뜻

* 이영춘
* 평창 봉평출생
* 경희대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전, 원주여교 교장
* 현, 강원장애인복지신문사 회장
* 1976년’월간문학’ 신인문학상 당선 등단
* 시집 <시시포스의 돌> <슬픈 도시락>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 가다>
시선집 <들풀>외 다수.
* 수상 : 윤동주문학상. 강원도문화상. 고산윤선도 문학대상.
동곡문화예술상. 한국여성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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