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빌려 입은 ‘의복’ 주인에게 돌려줘야

병신년 섣달 그믐날, 아쉬워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끝이 없다. 이는 마치 연정(戀情)과 애정(愛情) 그리고 인간애(人間愛)가 속속히 들어버린 아내와 자식 그리고 지인들이 멀리 이별할 때에 헤어지기 어려운 것과 같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그 사람의 수염·눈썹·정신·노랫소리·웃고 꾸짖는 모습·짐을 꾸린 모습·걸음걸이를 자세히 살핀다. 혹 이 뒤에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면 그 모습을 어느새 잊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을 되새기고, 기억을 온전히 남기기 위해 기록하는 것, 이것이 ‘송구영신’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가슴 아픈 일도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고 애써 기억에 새기려 할 것이다.
좋은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지만, 나쁜 기억까지 모두 끌어안고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괴롭다고 해서 피하려고만 한다면 기억은 언젠가 다시 돌아와 발목을 잡는다. 정면으로 마주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기억은 족쇄가 아닌 든든한 발판이 된다. 좋은 새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묵은해를 잘 떠나보내야 한다. 다시 못 올 시간을 찬찬히 살펴 기억에 새기는 것, 묵은해를 배웅하는 최고의 작별인사가 아닐까 생각되지만 필자가 보내야 했던 16여년 세월의 그믐날은 용서할 수 없는 아픔으로 보내야 했고 또 새 해를 맞이하는 연속성의 반복이다.
따라서 일몰(日沒)과 일출(日出)이 교차하는 그믐날, 우리 사회에서 비상식적으로 겪어 본 상처를 되뇌이면서 부끄러운 민낯의 주인공들의 비뚤어진 마음을 짚어 보고자 한다.
사람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거나 떳떳하지 못한 것이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군들 부끄러운 일이 없겠는가. 그렇지만 이 부끄러움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람이 되게도 하고 짐승이 되게도 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이 있을 때 이를 고친다. 부끄러움에 대해 사람이 되는 길은 이렇듯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들 주변에는 이런 뻔한 길을 가기를 포기 하는 이들이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자신의 욕망이 도덕률에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 있을 때 얻고자 하는 것들을 얻으려는 비상식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 못하고 타인의 행복권과 추구권을 빼앗는 일이다.
자유경제체재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이 모자랄 때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 쉽고, 이에 자신의 본질을 감추려고 남의 갓과 두루마기를 빼앗아 사회적으로 번듯하게 보이려는 웃지 못 할 기형적 모양을 키운다. 자신을 속이고 속이는 동화의 욕망은 그 부끄러움이 감출 수 없는 것에 관계되었을 때는 자기혐오와 모멸을 야기하고, 감출 수 있는 것일 때는 간교함으로 사실을 변명하거나 엄폐하도록 만든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사회의 통념이나 도덕률에서 벗어난 외톨이 나를 대면하는 일이다. 거울에 비친 모자라고 떳떳하지 못한 나의 민낯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그 일은 불편하고 괴롭다. 자기혐오나 사실 엄폐는 이 불편함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자기혐오나 모멸을 통해 사회와 동화하고자 하는 자신의 숨은 욕망을 실망시켜 포기하게 하려 해도 욕망은 잠재워지는 존재가 아니며, 부끄러운 사실을 엄폐하여 사회와의 표면적인 동화를 실현하더라도 자기기만이라는 또 다른 부끄러움이 추가된다. 부끄러움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 끔찍한 괴물로 변한다.
부끄러움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맹자는 “부끄러움은 사람에게 있어 중대한 것이다”라고 했고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라고 하였다. 모자라고 떳떳하지 못한 나를 직시하는 괴로운 일을 감내하기가 뉘라서 쉽겠는가. 이런 괴로운 일을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자기 연민이 필요하다. 진정한 자기 연민 속에서 용기가 싹튼다. 그리고 그때라야 부끄러워할 줄 아는 힘이 생겨 부끄러워하는 것을 고칠 수 있다.
그 어떤 관련 사실을 덮어 잊혀 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짐승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따라서 새해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모자라고 떳떳하지 못한 자신이 저지른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먼저 자신을 측은히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람 되기를 위한 용기를 찾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2017년 그믐날에는 자기반성에 따른 용서를 통해 문제가 된 것들은 마음에서 사라지고 기록으로만 남을 수 있는 작별의 정을 온화하게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저작권자 © 강원장애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