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후견 결정을 받은 ‘피한정후견인’(被限定後見人) 지적장애인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반드시 한정후견인과 동행하도록 한 행위는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한정후견인은 질병·장애·노령에 따른 정신적 제약 탓에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한 이유로 가정법원의 한정후견개시 심판을 받은 사람으로 종전 민법의 한정치산자에 해당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재판장 김진철)는 28일 지적장애인 고모씨 등 18명이 우정사업본부(우체국)를 상대로 낸 장애인 차별행위중지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우체국이 고씨 등에게 100만원 이상 거래의 경우 한정후견인의 서면 동의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한정후견인과 동행하게 한 것을 중지하라”고 판시했다. 이어 “우체국은 또 6개월 이내 100만원 미만의 거래 경우에도 현금자동입출금기와 체크카드 거래 등이 가능한 기술적 시스템 장치를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아울러 “우체국이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은 경우 1일 1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며 “또 고씨 등에게 (차별 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가한 것과 관련해) 위자료 50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우체국은 한정후견 결정을 받은 지적장애인이 돈을 인출할 때 현금카드나 인터넷뱅킹이 아닌 반드시 창구를 통해 거래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인출일 이전부터 30일 합산한 금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한정후견인이 창구까지 동행해야 한다. 한정후견인이 서면 동의서를 제출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고씨 등은 우체국의 이 같은 행위가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인출일 이전부터 30일 합산한 금액이 100만원 미만인 경우 우체국 창구 이외에도 현금자동입출금기, 컴퓨터, 전화 등을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30일 합산 금액이 100만원 이상 300만원 미만일 경우 한정후견인에게 받은 서면동의서가 있으면 혼자 은행거래를 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도 우체국의 이같은 행위는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체국을 제외한 은행들은 100만원 이상 거래의 경우 한정후견인의 동의서를 요구할 뿐 동행을 무조건 요구하지 않는다”며 “우체국의 조치는 지적장애를 사유로 비장애인과는 동등하지 않은 편익을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을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라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우체국이 100만원 미만 시 창구를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한 행위에 대해서도 (정신장애인들의) 행위능력에 제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지급기 등 이용을 제한했기 때문에 차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다만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정신장애인을 위한 금융거래 가이드를 마련하라는 청구에 대해서는 우체국에 이미 시정명령을 내린 만큼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취지로 기각했다.
이인동 기자/newskw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