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딸에게 쓰는 가을 편지


박혁종 본지 대표

두어 평 남짓한 필자의 서재는 엊그제 결혼한(10월 13일) 딸아이의 방이기도 했다. 요즘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기가 잦아졌다. 서재의 창문을 열자 새벽별 하나가 달빛에 젖어 흐른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별을 바라보다가 옷깃을 여미고 베란다로 나가 덧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새벽공기가 상큼했다. 지금쯤 딸아이는 새 보금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새로 옮겨진 자리가 낯설지는 않을까?
딸에게는 ‘생소한 것에 당황하지 않고 익숙한 곳에서 타성에 젖지 않는다’는 생처교숙(生處敎熟)을 일러두긴 했어도 괜히 걱정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딸에게 편지를 썼지만 전해주지 못했다. 애비의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은 이랬다. “언제까지나 나의 딸인 것만 같았던 네가, 어느덧 훌쩍 크더니 제 짝을 만나 훨훨 날아가 버렸구나. 날아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남아 있는 둥지의 빈 곳이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지지만 이 적막함은 네가 가꿀 가정의 시끌벅적함으로 바뀌어 지겠지, 자식과 부모로 만난 우리의 소중한 인연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네가 주었던 그 많은 웃음과 행복, 그리고 팔불출이 된 기분으로 산 애비와의 삶의 기간 동안 너무도 감사하고 경이로워 슬픔은 기쁨과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네가 주부와 엄마로 성장해 가면, 나와 어머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성장하겠지. 그날을 기다려 보며 또 저 너머의 삶을 살아가겠지.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 늘 새기고 살 거라.” 고 했지만 마음 개운치 못한 것이 있다. 결혼식을 전 후해 필자가 심한 감기 몸살로 많이 힘들어서 딸에게 “고맙고 사랑했노라”는 진솔한 심정을 표현하지 못해서다. 너무나 짠한 눈물이 고인다.
사업에 실패하고 아들, 딸에게 아무것도 해 줄게 없어서 늘 서먹서먹했었고, 괜한 트집으로 딸에게 마음에 고통을 주기도 한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나의 딸 솔아, 넌 아직 젊어. 혹시 애비에게 차곡차곡 쌓여진 트라우마가 있다면 ‘넘어진 그곳이 희망의 시작점’이라는 말로 대신 한다. “사랑하는 내 딸 솔아, 아빠 엄마가 있어서 좋지?” 이 물음에 네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으면 참 좋겠다. 나는 빈털터리다. 나는 어깨를 쭉 펴고 딸이 머물다간 방을 기웃거려보고는 하늘을 봤다.
딸이 나보다 더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났다는 게 기분 좋다. 사위랑 이야기해보니 성격 좋고,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다. 다른 집 아버지들은 남자 데려가면 쉽게 허락하지 않고 애를 먹인다는데, 나는 빨리 허락한 까닭은 그 녀석이 왠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딸과 사위에게 또 이맘 때 결혼한 신혼들에게 당부해 보면, 무릇 인간관계는 신의와 예절로써 맺어지는 것이기에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그 신의와 예절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 대, 같은 시간대에서 부부로서 만난 인연을 늘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그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세계 인구가 76억 인구이니 38억 대 1의 경쟁을 뚫고 어렵고도 매우 어려운 만남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억겁의 인연의 존재로 만나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지 집 안의 가구처럼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온 사람들끼리 한 집 안에서 살아가려면 끝없는 인내가 받쳐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맞은편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이해와 사랑의 길이 막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붉게 타오르는 햇덩이가 하늘을 열고 상큼한 바람이 아파트 큰 마당을 쓸고 간다. 코를 흠흠 거리고 가을 냄새를 맡는다. 내가 밟은 지평마다 축복이고, 감사의 물결인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는 ‘버려야 할 짐과 행해야 할 짐’만 잘 챙기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착각하는 것 같다. 인생에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자신의 꿈으로 설정하고, 내가 상대보다 얼마나 재물이 많은가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또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듯, 물질 또한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어느 것 하나 내 것은 없다. 잠시 살아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것을 보관하고 지키고 있을 뿐이다.
매일 아침 우리 앞에 돈을 벌어야 할 24시간이 아니라, 살아야 할 24시간이 펼쳐진다. 달아나고 싶은 유혹에 지지 말고, 지금을 생생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투자할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 자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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