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 춘
1. 어둠의 터널에서 터널로
‘산다는 것, 그리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제목은 붙였지만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망설여진다. 산다는 것은, 결국 몸부림친다는 것이 아닐까? 철학자들은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하고 있다. 학문이 깊지 못하여 잘은 모르지만 하이데거는 <존재의 시간>에서 존재를 존재자(存在者)의 존재, 즉 현존재(現存在)로 규정하고 존재를 이해하는 통로를 자각적 존재인 자신에게서 찾았다. 인간은 현존재요, 현존재는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이므로 세계와의 관련성과 시간성에서 인간존재를 분석하고 인간 존재의 근본적 구조가 관심이요 불안이며 인간은 죽음에의 존재, 즉 무(無)에의 존재임을 밝혔다. 특히 언어는 인간의 현존재를 대표하며, 존재 이해의 원천이 된다고 하였다.
나는 사춘기부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결코 40세를 안 넘기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곤 했었다. 왜 그랬을까? 살아 보지도 않고 몸부림쳐 보지도 않고 존재라는 것이, 혹은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죽음을 동경하면서 살아왔다. 단 하나 이유가 있다면 ‘허무’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산다고 해도 결국은 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회의였다. 그래서 하이데거 식으로 ‘불안과 죽음의 존재, 무의 존재’에 대한 갈등으로 고뇌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장용학의 <요한시집>에 나오는 누혜처럼 깊은 동굴 속에서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에 기대어 죽어가는 꿈을 꾸곤했다.
그렇게 우울하고 고독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 부끄럽다. 왜냐하면 자신을 속이고 예까지 왔으니까….
2.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언어는 인간의 현존재를 대표하며, 존재 이해의 원천이 된다”고 한 하이데거의 말이 구원이라도 되는 양, 나는 고귀한 언어를 어지럽히며 나를 치유하기 위한 글을 되고 말고 썼다. 순간순간의 발자국, 흔적, 같은 아픔들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그 아픔을 풀어내기 위해서 썼다고 하는 것이 정답일 게다. 굳이 구원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냥 순간순간의 생각, 머무는 시선,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상처, 충격, 같은 것들을 썼다. 그래서 내 시는 깊이 들여다 보면 어둡다. 그러나 따뜻하다는 말도 겸해서 듣는다. 실은 따뜻한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과의 교감이다.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노파들, 그리고 갈 곳 없는 들풀 같은 민초들, 그런 대상들이 주로 내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내 시 중에서 <슬픈 도시락>의 주인공도 그렇고 <들풀>의 주인공들도 그렇다. 어디 그뿐이랴! <컵라면>의 주인공도 여직공이고 <대지의 노래>의 주인공들도 모두 노동자들이다.
그 다음은 혈연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죽음, 이별, 그런 것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제4시집 <네 살던 날의 흔적>(1989년 문학세계간행 시리즈85)이 그런 유의 대표적이며 <어머니의 강, 그 눈물> <사친가> <아버지와 자장면> <길에 누워 있는 입> 등 부지기수로 많다. 아무튼 존재한다는 것은 고뇌의 연속이다. 고뇌하므로 존재의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존재는 “불안이며 죽음의 존재. 무의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렇게 아픈 이야기들을 쓰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쓴다는 것은 과연 나를 치유하고 구원이 되었는가? 정답은 없다. 쓰는 순간순간에 아픈 감정들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되고 휴지가 되어 날아가는 치유는 되었을지언정 구원은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떠난 사람은 떠난 것이고 남은 사람의 몫은 언제나 아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근간에 쓰는 작품도 많은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또는 문득문득 죽어간 사람들의 영상으로 인하여 어두운 그림자와 연결되곤 한다. 얼마 전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떠난 젊은 해군들 46명, 그들이 떠나던 날 아침 신문 한 면에는 “여보, 아들아! 아침밥 먹고 가야지!”라면서 울부짖는 아내와 어머니와 그리고 어린 자녀들의 우는 모습 때문에 한 동안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렇게 요즘 내 시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어둔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굳이 변명한다면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 인간들의 삶이고 생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쓰는 것이 내 의무이며 문학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여기 신작으로 소개한 <생>과 <순간순간> <안개>도 그런 유의 내면 의식의 표출이다. 그리고 <냇물과 소나무와 혀>는 사람들의 말실수를 그려 보고자 한 것이고, 나머지< 백야>는 제목 그대로 사랑이다. <카오스>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픔의 표현이다. 이번에 이 지면에서는 빠졌지만 46용사들의 죽음을 쓴 시는 <지상의 마지막 밥상>이란 제목으로 (2010. 다층 여름호) 이미 발표되었다.
3. 에필로그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내 어쭙잖은 글들이 과연 무슨 효용가치가 있겠는가?를 자성할 때가 많다. 자고로 작가는 한 나라의 언어를 아름답게 만들고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문화의 장식 구실을 해야 한다는데 또한 한 시대를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 노릇을 해야 한다는데 내 작품은, 내 시는 과연 그럴 수 있는가? 반성한다.
사르트르는“배가 고파 우는 어린 아이들 앞에서 나의 소설<구토>가 한 조각의 빵 무게도 나가지 못한다고 개탄하면서 문학의 현실적인 무력감을 절망적으로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30대 진보적인 지식인 리카르두는”어떻게 빵과 문학작품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 있느냐?고 사르트르의 고백을 반박하면서 문학은 배고파 우는 어린 아이에게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에 배고픈 어린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단다. 그런 말로 위로를 삼으려 해도 내가 그런 미문을 만들어 내지 못함에 대하여 다시 한탄하면서 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 시가 삼류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늘 마음속 한 구석에 큰 돌덩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시(詩)라는 큰 바위덩이가 내 가슴속에서 살아 있는 생명으로 탄생되기를 기원하면서 쓰고 있다.
*평창 봉평 출생.
*경희대학교국문과 졸업.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국어교육과 졸업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심사위원 : 이동주, 김규동 시인)
*시집 <종점에서> <시시포스의 돌> <귀하나만 열어 놓고> <네 살던 날의 흔적> <슬픈 도시락> <시간의 옆구리> <봉평 장날> <노자의 무덤을 가다> <신들의 발자국> 외, 시선집<들풀>등이 있음.
*수상 <윤동주문학상> <강원도문화상> <경희문학상> <강원교육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인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동곡문화예술상> <한국여성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