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아듀(adieu) 2018


박혁종 / 본지 대표

빚을 내어 소를 잡아먹기는 쉽지만 그 빚을 갚으려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미중 무역 분쟁 속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빚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유하거나 향유하는 행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행복은 빚이 없고 지탄받지 않는 것이 아닐까?
가계는 부동산 구입을 위해 끊임없이 빚을 내고 있어서 가계부채액은 지난 8월말 기준 1천500조원을 넘어섰고, 자영업자 부채도 300조원 이상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들이 붕괴하면서 과도한 빚에 쓰러지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관계자는 여전히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정말 남 일처럼 말하고 있다. 이런 지금의 상태라면 경제는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부 여당의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책적 권리는 평범한 진리에서 나와야 한다. ‘아주 잘 해야겠다’ 하면 시작부터 막힌다. 공명심, 우월감, 힘이 들어가면 다음을 기다리기는 희박하다. 최고의 청와대나 권력집단의 권리, 최고의 국민 포플리즘적 참여, 그런 헛힘을 빼야 한다.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행동할 요량으로 일단 자신이 국민의 권리를 위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는 있지 않았는지를 사려 깊게 생각 한 후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시작을 못 할 것이다. 시작을 못 하면 시간이 갈수록 더 불안해진다. 국민이 준 좋은 권력은 자신의 권리와 책임, 의무를 다한 뒤에야 비로써 최고의 국가가 될 수 있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국민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전사’는 특별하고 잘나고 특정집단만이 참여 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나의 권리를 찾는 가장 평범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시대정신만 있으면 국민의 리더인 ‘전사’가 아닐까?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8년 한 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2019년 새해에는 누구라도 만나면 모두 반길 수 있는 나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구나 함께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가족이나 친지, 지인이나 동료들까지 어느 누구도 행복했으면 참 좋겠다.
어느 날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우면 되는 것이다” 라고 답했다.
즉,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모든 일이 잘 된다는 뜻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정말 쉬운 법칙인데, 사람들은 왜 그 법칙을 지키지 못할까?
그 이유는 ‘착각’ 속에 있다. 백성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왕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인데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회사의 사장도, 정치인도, 종교인도, 한 집안의 가장도, 자식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사장도 직원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 정치인도 국민이 뽑아줘야만 배지를 달 수 있는 것, 가장도 가족이 있어야만 존재하고, 자식도 부모가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역할은 군림이 아닌 존중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각자 역할의 본분에 충실하다면 최악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총체적으로 갈등과 분열로 치닫고 있다. 이를 조금이라도 해소 하려면 잊지 말아야 한다. 낮은 역할, 높은 위치, 높이 올라가고 싶다면,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대해야 한다.
내가 권력을 잡았다고 내가 하는 정치가 귀하다고 하여 국민을 천히 하지 말고, 자기가 크다고 하여 남의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고, 자기의 알량한 지식과 용기를 믿고서 국민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정치 사회는 나의 본분을 벗어나 나를 꾸미고 드러내는 데에 더 많은 가치를 두게 하는 속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성형과 화장으로 꾸며진 외형이 솔직한 ‘대한민국’이 아니며, 희망적 고문으로 국민을 저열하게 몰고 가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꾸며진 ‘대한민국’을 원하는 사회적 요구를 외면하기도 어렵겠지만, 그러나 가끔 선인들의 지혜를 본받아 자꾸 커져만 가는 ‘아(我)’를 버리고 사라져 가는 ‘오(吾)’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요즘을 사는 우리는 참으로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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