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삶과 죽음은 길이가 같다
해를 먹은 까마귀떼처럼 갈대숲에 내리는 산
구름꽃 하나 그 그림자 틈새로 노을이 진다
별빛이 기웃거리고 달빛에 바람이 부서진다
멀리 첨탑의 종소리가 내 안 혈맥의 동굴에 촛불을 켠다
한 줄기 소나기 양철지붕에서 울 때 잠들었던 골목,
길게 기지개를 켠다
마음은 흙먼지처럼 바람에 흩어지고
몸속으로 흘러든 통증 한 점 블랙홀이 된다
생각들이 느릿한 리듬으로 서성거리다가
내 안의 비밀을 토해내듯 바람의 길이 된다
서로 몸 비벼 울리는 푸른 종소리 먼 곳은 더욱 가까워지고
가까운 곳은 우주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
시계의 초침소리처럼 윤곽은 더욱 또렷해진다
대지에 수많은 길들이 생겨나고 골목길에 바람이 지나간다
모서리마다 불시착한 詩가 암호처럼 흔들리고 있다
세상의 길들은 제 몸 바꾸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좁은 골목길에 바람이 분주하다
* 정호영 약력
* 2015년 월간 See 신인상당선 등단
* 2015년 미지산 문예지 시부문 최우수상
* 현재. 서울시인협회
* 양평문협 회원
* <시를 뿌리다> 시문학동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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