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클잎
비구름이 물러가자 하늘이
파란 스크린을 펼쳐 놓는다
각각의 주연과 조연들이 푸른 물기를 털어내며
제 역할의 대본을 암송한다
긴 다리 대벌래, 당귀 잎 뒤에 숨어
쓰륵쓰륵 묵독 중이다
검은등뻐꾸기는 길섶 약수터에서
칼칼해진 목을 축인다
서로 몸 비비며 암송하는 나뭇잎들
재넘이가 간간이 대역을 해 준다
수리취, 어수리, 흰송이풀, 노란 마타리 그 꽃숭어리 몸짓에
깜박깜박 대사를 잊어버리는 흰도라지모싯대
수줍어 고개 숙인다
영지버섯, 겨우살이, 작약, 외워도 외워도 지천인 보약들
곰배령은 동의보감이다
금강초롱만 한 암 덩이 안고 아침가리골로 숨어 든 아내 위해
장씨는 매일 숲으로 숨어드는 배역을 맡는다
숲으로 숨어들면 들수록 아내의 얼굴이
동자꽃으로 물들어간다
주연에서 밀려나 상처 하나씩 안고 사는 곰배령 사람들
이곳에선 주연과 조연의 경계를 허물며 모두 자연이 된다
탁, 무대의 조명이 켜 진다
각양각색의 엑스트라들이 초록의 꿈을 키우는 야생의 군락
그 천상의 정원,
절창絶唱이다
*곰배령: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소재, 국내에서 생태보존이 가장 뛰어난 곳.
· 정클잎 시인
· 춘천출생. 춘천여고. 방송통신대국문과 졸업.
· 2010 《시현실》등단
· 2007년 한국방송대 방송문학상 수상.
· 2009년 평화문학대축전전국백일장 대상.
· 2010년 제9회 환경부장관상패 전국여성백일장 대상.
· 현, 춘천민예총 문학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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