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詩)] 식탁에 둘러앉아 / 이서빈

금주의 시식탁에 둘러앉아

이서빈

옛 친구 셋이 수다 한 상을 차렸다
이야기를 사과껍질처럼 돌려 깎는다
흘러내리는 추억들이 구불구불 쟁반에 쌓이고
접시에 담긴 말들이 아삭아삭 사과 맛을 낸다
새콤달콤 이야기의 당도가 올라간다
쓴 말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입에 붙는 말만 포크로 찍어 서로에게 권한다

수다가 몸집을 불린다
제 입맛과 다르다고 투덜대는 여자들
깔끔한 성격과 결혼한 친구는 결백증에
낭만에 빠진 친구는 과소비에
일편단심과 결혼한 친구는 그 질긴 고집에 못 살겠단다
여자들, 식탁에 둘러앉아
실행 못할 빤한 결말을 앞에 두고 남편을 법정에 세운다

접시에 펼쳐놓은 말을 자꾸 맛보는 여자들
과식으로 배가 부르다
어느새 바닥에 깔고 앉은 하루가 노을로 바뀌고
먹다 남은 과일이 누렇게 변했다

배고픈 집들이
아내 엄마 며느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서빈
이서빈

· 경북 영주 출생
·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저토록 완연한 뒷모습’(민조시집), ‘달의의 이동 경로’(시집)
· 문협 인성교육위원, 펜 회원, 자유문협 사무국장, 한국시낭송회의 사무총장 민조시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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