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이 수화언어(수어) 시청권을 보장하지 않는 방송통신위원회, KBS·MBC·SBS 등 공영방송 3곳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했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아래 장애벽허물기)’ 등 10여 개 단체는 20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통신위원회, KBS·MBC·SBS 등 공영방송 3곳에 대한 차별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농인들의 수어 시청권 보장 △방송의 수어통역 비율 30%까지 확대 △KBS·MBC·SBS 메인 뉴스에 수어통역 제공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아래 장애인방송 고시)’ 개정 등을 요구하며, 이와 함께 한국수화언어법(아래 한국수어법) 개정도 촉구했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한국수어법 제정으로 많은 청각장애인이 기대를 걸었지만, ‘대체 무엇이 바뀌었냐’는 등 불만 섞인 제보가 끊이질 않는다”며 “한국수어법을 분석했더니 농인의 수어언어권이 취약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2월 한국수어법이 제정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청각장애인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수어법 제정에 기대를 걸었던 만큼 실망감만 크다. 이에 청각장애계는 실효성 있는 제도 마련을 위해 한국수어법 개정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29일에는 청와대,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한국수어법을 지키지 않는 정부 부처 9곳을 인권위에 차별 진정하고, 지난 2월 7일에는 광화문에서 한국수어법 개정 촉구 시위를 벌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이러한 맥락에서 방송 접근권 보장을 중점에 두고 이뤄졌다.
우리나라 장애인방송 의무고시율은 자막방송 100%, 화면해설방송 10%, 수어통역방송 5%로, 대부분의 방송사는 이를 달성하고 있다. 그런데 자막방송이 있는데 굳이 수어통역방송이 필요할까? 청각장애인 당사자들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철환 활동가는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음성 언어 체계에 익숙하지 않아 자막방송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수어통역방송이 늘어나야 청각장애인의 방송 접근권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KBS, MBC, SBS 등의 공영방송의 8시, 9시 뉴스는 중요한 정보인 만큼 필수적으로 수어통역방송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장애계는 장애인방송 의무고시율이 30%까지 확대되도록 장애인방송 고시가 개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진호 한국농아인협회 미디어지원부장은 “현재 의무고시율 5%는 24시간 방송 중 1시간에 해당하는데, 그마저도 낮 뉴스에서만 제공하고 있다”며 “30%로 늘어난다고 해도 하루에 최소한 드라마 한 편을 수어통역방송으로 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한국수어 사용자들이 방송접근권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모든 방송에서 수어통역방송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태훈 한국장애인연맹 실장은 “큰 틀에서 한국수어법은 언어법이 아닌 인권법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대통령 연설에서조차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한국수어법이 언어법으로 해석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며 시급히 개선을 촉구했다.
최죽희 기자/newskw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