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입법 목적 맞게 설립·운용 돼야 한다”
이유 없이 어린 아이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병 환자에게 항소심이 벌금형과 함께 치료감호를 선고하면서 치료감호소에 조현병 환자 등을 위한 시설을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 법원의 판결과 별개로 현행 교정교화정책 전반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23일 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A(20)씨에게 원심과 같이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A씨는 자폐성 장애와 조현병 증세 등이 동반돼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유 없이 4세 여자아이에게 상해를 가하고, 이에 항의하는 아이의 아버지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돼 배심원 5대 2로 A씨의 심신미약을 인정하고, 만장일치로 벌금 100만원과 치료감호 필요성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도 배심원 평결에 따라 선고했다.
A씨는 유·무죄를 다투진 않았지만 양형부당 및 치료감호처분이 부당하다고 항소했다. A씨의 어머니도 ‘치료감호소에서 수용될 경우 증상이 악화된다며, 다른 시설에서 치료받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탄원했다.
2심은 A씨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다만 2심은 “판결 집행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에 대해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치료감호시설을 설립 및 운영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치료감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1항에서는 ‘치료감호대상자’를 ▲심신장애 등으로 인해 벌할 수 없거나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면서 감경되는 심신장애인 ▲치료감호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성이 있는 자 ▲재범의 위험성이 인정되는 자로 규정한다.
2심은 A씨가 이 같은 법률에 의해 치료감호대상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이 확인한 결과 현재 국내 유일한 치료감호소인 공주 치료감호소는 약물복용 외에 자폐장애를 위한 치료 과정이 운영되지 않고, 특수재활치료 과정도 없다.
이에 2심은 치료감호시설에서의 치료 필요성을 고민했다. 2심은 “A씨에 대한 치료감호를 명령하는 것이 형식적으로는 법 규정에 부합할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단지 일시적인 자유의 박탈에 그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치료감호 명령을 취소하진 않았다.
2심은 “자폐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치료감호의 필요성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면서 “법원은 법률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고, 치료감호시설 설립 및 운영은 국회의 입법, 정부의 집행에 따라 이뤄지는 과정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치료감호법의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치료감호시설을 설립·운영함으로써 판결의 적정한 집행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최죽희 기자/newskw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