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펜션사고’ 학생들 빠른 회복
연탄난로·잠수부 많은 환경 ‘최첨단 고압산소치료 시설 갖춰’
지난 18일 오후 1시 12분 강릉시 경포아라레이크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학생 10명이 발견됐다. 소방대원이 출동했을 당시 3명은 심정지 상태였다. 나머지 7명도 흰 거품을 물고 위독한 상태였다. 이들은 강릉아산병원·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으로 옮겨졌고, 즉시 다인용 산소챔버에서 치료 받았다. 전국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를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치료시설·의료진이 갖춘 병원은 한손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이 가운데 두 곳이 강원도에 있다. 의료진은 20일 “각각 회복속도는 다르지만 7명 학생들은 무사하다”면서 “가장 빨리 의식을 회복한 학생은 퇴원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 다인용 챔버 갖춘 응급의료시설 두 곳, 모두 강원도에 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챔버 치료가 필수적이다. 챔버는 대기압(1기압)보다 높은 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환자가 순도 100% 산소를 흡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신체 내 산소농도가 떨어진 조직과 장기에 모세혈관을 통해 고순도의 산소를 공급하는 치료가 가능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에 챔버를 갖춘 의료기관은 129곳(지난 9월 기준). 챔버는 1인용과 다인용(6~12인용)으로 나눌 수 있다. 다인용 챔버는 환자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위중한 상태인 경우 의료진이 함께 들어가는 곳이다. 환자 옆에서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대고,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환자용 다인용 챔버를 갖춘 의료기관만 추리면, 전국에 12곳으로 확 줄어든다. 이중 공군항공우주원(충북 청주), 해군해양의료원(경남 창원)은 군인들만 이용할 수 있다. 민간인을 위한 의료시설 중 △응급환자를 받지 않는 곳 △화상·당뇨병 전문병원을 제외하면 다인용 챔버를 갖춘 종합병원은 강릉아산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두 곳만 남는다.
의료계 관계자는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40곳 중 강릉아산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두 곳만 다인용 챔버를 갖고 있다” 면서 “대형병원이 밀집한 서울에서도 위중한 일산화탄소 중독환자들은 강원도로 이송한다”고 말했다. 강릉 펜션사고 부상자 가운데 5명은 현재 강릉아산병원에, 2명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입원해 있다.
◇ 강원 연탄난로·잠수부 많은 환경…최첨단 산소치료 인프라
강원도에 최첨단 고압산소치료 시설이 갖춰진 이유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강원도에는 동해에서 활동하는 잠수사들이 많다. 그만큼 잠수병(질소가 혈액 속에 돌아다니는 병)치료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강릉아산병원은 동해에서 활동하는 잠수사들의 잠수병을 치료하기 위해 2015년 다인용 챔버를 들여왔다. 다인용 챔버 가격은 10억7천600만원으로, 강원도청 산하 환동해본부가 국가·도청 예산을 들여 구입비용의 93%(10억원)를 지원했다. 강원도는 ‘잠수 어업인 진료비 지원조례’에 따라 잠수 어업인이 내야 할 챔버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강원도에 아직 연탄난방을 하는 가구가 많은 점도 작용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이 발표한 ‘2017년 전국 연탄 사용가구 조사’에 따르면 연탄난방을 사용하는 전국 13만464가구 중 강원도 가구가 2만7천843가구(21%)로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비율이 가장 높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연탄가스(일산화탄소)’ 중독 환자 발생 가능성이 높아 10인용 다인용 챔버(약 10억원)를 갖춘 경우다. 병원 측은 “차용성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고압산소치료에 관심이 많은 의료진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은 10억원쯤 하는 이 기기를 전액 자체 예산으로 구입했다.
인구 2천200만명 수도권 대형병원은 왜 이런 시설을 갖추지 못했을까. 의료계 관계자들은 ‘수익성’ 이야기를 꺼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10인용 다인용 챔버 한 대가 10억원에 이를 만큼 고가(高價)인데다가, 한번 챔버에 들어가면 전문 의료진이 2시간 가량 꼼짝없이 환자 곁을 지켜야 한다” 며 “하지만 환자에게 한번 고압산소치료를 했을 때 건강보험공단이 인정하는 수가는 10만원에 불과하다. 시설비·인건비 다 따지면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유지비에 비해 수익을 낼 수 없어 굴지의 서울 대형병원들이 다인용 챔버와 전문의료진을 갖추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을 통해 지역간 거리가 먼 도내 특성상 관련시설을 확대·보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수의 의료기관이 이같은 다인용 고압산소치료기 설치를 꺼리는 이유는 비싼 설치비용과 추가인력 운용 부담 때문이다. 다인용 고압산소치료기는 1대당 10억원선,1인용 치료기는 2억원 선으로 알려졌다.담당 의료진 1명과 응급구조사 등 2~3명의 전담인력도 필요하다.도내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강원도는 인구 대비 고압산소치료기가 확보된 병원이 많다”며 “비싼 설치비와 이용 환자가 적은 것도 치료기 설치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5년 4천391명,2016년 4천352명,지난해 4천122명이다.
최죽희 기자/newskw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