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 풀비

김경숙

풀비 지나간 자리마다
격자문살 도톰하게 살이 차오르고
누렇던 달빛 깨끗해진다

엄마가 풀비로 달빛을 쓸 때, 여러 겹 덧발라진 자리가 먹구름 층층 포개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들창문과 달이 서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중이었다 문종이가 말라가면서 환하게 달의 뼈가 보였고 풀벌레소리 투명해지자 한층 밝아진 문살이 팽팽하게 달빛을 껴안고 있었다 밝음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어둑한 문살만한 것이 없다는 것, 부지런한 엄마에게 배웠다

꽃 핀 싸리나무를 엮어
마당을 쓸 때, 후드득 떨어지는 꽃들 마냥
덜 풀어진 밀가루 덩어리들이
툭툭 문살 위에 꽃으로 불거졌다

풀비 지나가고
불을 켜면 방안이 따뜻하게 비쳤고
불을 끄면 마당이 포근하게 빛났다

풀비 지나가고,
불을 켜면 방안이 어둑하게 비쳤고
불을 끄면 마당이 어둑하게 빛났다

* 김경숙
* 2007년 《월간문학》 등단.
* 저서 『소리들이 건너다』
『이별 없는 길을 묻다』
『우리시대의 나그네』
『먼 바다 가까운 산울림』 『얼룩을 읽다』
『빗소리 시청료』 외.
* 한국바다문학상, 해양문학상,
부산문학상 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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