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시] 그믐날

이영춘

그믐날 밤이면 아버지가 보고 싶다
처마끝에 초저녁 달 내려와 기지개를 켤 무렵이면
불콰한 얼굴로 고등어 한 손, 고기 한 칼 사 들고
논두렁길을 휘청휘청 걸어오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 오늘 밤 그믐달로 떠서 자식들에게 줄 지전 찾느라
빈 주머니 뒤지며 부시럭거리셨는데

고등어 반 토막 뚝 잘라 화롯불에 구워 밥상 들고 들어오신 어머니,
돈도 없다면서 술은 웬 술이어요?!
빈 주머니 뒤지던 아버지 손목이 가늘게 흔들리셨는데
오늘 밤 나는 왜 자꾸 아버지가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걸까?
지금은 온 데 간 데 없는 기침소리만 귓전으로 건너오는데
웅크리고 앉았던 앙상한 등뼈 창살 그림자로 어른거리는데

빈 주머니 같은 속울음 삼키셨을 아버지의 생애
때로는 헛술로 위장을 하고
때로는 헛기침으로 허세를 부리셨을 아버지란 이름의 긴 강물 줄기

그믐달로 비껴가는 아버지의 얼굴,
그 얼굴에 어려 자꾸 내가 넘어지는 밤이네
달무리 같은 그림자가 자꾸 목에 걸리는 밤이네

·이 영 춘
·평창봉평 출생
·전 원주여고 교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겸 감사
·강원장애인복지신문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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