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시론] ‘사랑의 온도탑’ 마음이라도 보내자

박혁종

본지 공동대표

강원도 내에서도 ‘희망 2021 나눔 캠페인 사랑의 온도탑’이 12월 1일 춘천시 중앙로터리에서 제막식을 시작으로 내년 1월 31일까지 62일 동안 작년 모금액 86억 원 보다 30% 낮춘 68억 원으로 모금 목표액을 잡았다. 그 이유는 코로나로 인한 서민들의 팍팍한 경제 사정을 감안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
우려되는 것은 한 겨울 동안 다소 미약하나마 사회적약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지난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질까 걱정이 된다.
나라 안과 밖이 ‘포스트코로나19’로 인한 고통과 아픔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의 문제임에 따라 새로운 대처의 의식을 공감하고 나누고 배려하는, 행동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의 따뜻한 정성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올 1월에 시작된 코로나 전염 바이러스 퇴치가 이맘 때 쯤에는 끝이 날것 같이 보였는데 예상 밖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확진 자 수가 배가 되어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지만 ‘코로나19’ 종식될 날을 우리 낙관(樂觀)하고 있다.
이는 과거 소아마비, 홍역과 천연두는 인류와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질병으로 아이들이 사망하거나 장애가 되는 치명적인 불치의 병이었으나 우리들의 극복 의지는 대단한 결과로 백신을 개발하고 접종하므로 지금의 시대를 맞게 하지 않았던가.
이에 지금 곳곳에서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임상을 마치고 일반 시민들에게 공급한다는 반가운 소식들이 사실로 전해 오고 있다. 이젠 시간만이 남았을 뿐, 인류 사회는 곧 코로나 19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으로 확신한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으로 시작된 달력이 ‘코로나19’와 더불어 길고도 긴 한 해 전부를 보낸 것 같아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장밖에 남지 않은 12월이 왠지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일까?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지나간 일을 되풀이하여 기억하고 음미해 보는 반추(反芻)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이 멍을 때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월은 유수같이 지나갔고 지금도 그 속도를 유지한 채로 전광석화(電光石火)보다 빠르게 가고 있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가려고 온갖 수단을 써보아도 멈춤이 없는 것이 세월 속 시간의 속성이다. 삶과 죽음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가진 자, 갖지 못한 자, 명예와 권력을 가진 자, 그러지 못한 자 등 모두는 시간 앞에 놓여 진 노예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지배를 벗어 던져 버리고 노예화 하려는 시간의 속임수에 벗어나야 한다. 시간을 숭배하면 할수록 시간은 우리들을 더욱 옥죄일 것이다. ‘멈춤’만이 온전한 나를 찾을 수 있다.
마음은 천천히, 행동은 실천으로 가는 목적지를 향해 초연히 그리고 단단하게 가면되지 않을까 한다. 힘들고 괴로운 것이 세상의 진리이지만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그 속에서의 심한 추위를 겪고 나면 새로운 싹이 움틀 것이니 마음의 봄은 늘 상 키워내며 그 시간까지 살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 속의 노예로부터 해방되고 독립되는 자신만의 안락함의 영혼을 키워나가자.
아주 오래된 추억도 아니지만 한여름 뙤약볕이나 찬바람이 살갗을 도려내는 추위 속에서도 묵묵히 산골마을 우리 집에 편지를 전해주던 우체부 아저씨에게 냉수 한 그릇 따끈한 우거지국 한 사발 내어주던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마음이 바로 지금의 사랑의 온도탑, 온도계 역할을 하셨다. 지금의 논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시대의 냉랭한 문화가 춘향가 중 한 대목이 생각이 난다. “적막강산의 찬 자리요”이다. 한 해 동안 고마운 마음, 따스한 사랑을 느낀 대상에게 나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 물질로 또 다른 나에게 다가서 보자. 그래서 유난히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던 2020년의 한해를 빗자루로 싹싹 마당 쓸어내듯 하지 말자. 이해가 두어 놓은 밑거름이 토양이 되고 숙주가 되어 남겨둔 씨앗 품어 씨줄과 날줄을 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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