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상식]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한 어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오복 중의 하나 고종명
우리 선조들은 행복을 오복으로 풀이했다.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이는 건강하게 부자로 오랫동안 덕을 베풀며 살다가 제 명에 편안하게 죽는 것이다. 조상들은 건강하게 사는 것과 함께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을 강조했다.
 조선말에 황현(黃玹)이라는 학자는 나라가 망하는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면서, 누군가는 죽음으로 이를 슬퍼해야 하지 않는가는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그는 선비노릇하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썼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모든 생명체는 유한하기에 언젠가는 죽는다. 사는 날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모든 생명은 수명이 있다. 닭은 10년을 넘기기 어렵고, 개는 20년을 넘기 어려우며, 사람은 100년을 넘기기 어렵다. 거북이, 학은 몇 백년을 산다고 하지만….
영어 ‘present’는 ‘현재의’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잘 사는 것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선물이다. 하루를 의미 있게 사는 것, 1분1초를 알차게 사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이다. 윤회설을 말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어떻게 이름을 남길 것인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질 것이다.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가장 흔히 아는 사람은 ‘단군’일 것이다. 많은 사람은 ‘단군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단군 할머니’였을지도 모른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하는데, 본디 창조주는 ‘하나님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생물학적으로 볼 때에도 어머니가 낳으시고, 역사는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었다는 증거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많은 것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기록하는 자에 의해서 가감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 옛 고을마다 있는 송덕비의 상당수는 일부만 맞다. 예컨대 1892년부터 고부군수로 학정을 일삼은 조병갑은 ‘태인현감을 지낸 아버지의 공덕비를 세운다’고 강제로 1000냥을 거둔 것이 계기가 되어 동학혁명이 발발했다. 바로 그 조병갑의 ‘송덕비’가 함안군에 있었다.
“조상이 음덕을 쌓으면 3대를 간다”는 말이 있다. 시민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면 3대를 인정해주는 풍습을 말한다. 살아가면서 음덕을 쌓는 일을 생활화 하는 것은 어떨까“ 모든 사회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선행을 장려하고 악행을 꾸짖고자 했다. 권선징악은 많은 옛날이야기의 주제이다. 다양한 종교도 선행을 장려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기소부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 논어에 나온 말인데,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자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인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원불교의 ‘나에게 이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自利利他)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가르침이 인생의 황금률이다. 나에게 이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할 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일방적으로 타인만을 사랑할 수 없고, 자신만을 위하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렵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면 좋을 것인가? 사람마다 생각이 있겠지만, 필자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곧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길이라고 본다. 특히, 살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건강하게 산다
  모든 인간의 꿈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무병장수이다. 현실은 늙고 병들어 사는 유병장수이다. 가족과 친척들의 삶과 죽음을 보면, 모든 사람은 늙으면 병들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질병에는 장사도 없고,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단지 시간이 다를 뿐이다.
건강관리를 잘 해 건강하게 사는 것이 곧 건강하게 죽는 길이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선진국에 비교하여 짧지 않다. 문제는 건강수명이 선진국에 비교하여 짧다. 죽음에 이르기 전 10여 년 간은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건강하게 사는 길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이웃과 어울려 사는 것이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1인가구가 늘어나서 함께 먹고 즐겁게 살기조차 어려운 세상이다. 독거노인은 문만 닫으면 감옥과 다름없다. 모둠살이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는 직면한 과제이다.

덕을 베풀며 산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덕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점차 잊어가고 있다. 농촌·농업·농민이 중심인 사회이었기에 평생동안 인간관계를 맺었는데, 이제는 도시·상공업·임금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유목민처럼 사는 경우가 많다. 이제 한 동네에서 30년 이상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입학한 초등학교와 졸업한 학교가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공동체사회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지역공동체가 점차 퇴색될 때 다른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구성원 중에서 덕을 베푸는 사람이 있을 때 품앗이는 계속된다. 어떤 모임에서 누구인가 먼저 커피를 사야 차를 나누는 문화가 생기고, 밥을 사야 밥을 같이 먹는 문화가 유지될 수 있다.

어른들이 먼저 덕을 베풀자
이 땅에서 점차 어른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농업사회에서는 늙어도 땅을 지킬 수 있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기술이 있어도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퇴출된다. 농업사회에서 노인은 소득이 줄어도 재산을 지킬 수 있었지만,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소득이 줄면 재산도 줄어든다. 모든 노인은 늙을수록 병들뿐만 아니라 가난하게 된다.
  그래도 베품의 문화가 지속되려면, 어른이 먼저 덕을 베풀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 라는 말이 진리이다. 지갑을 열어서 무엇인가를 베풀고, 입을 닫고 귀를 열면 젊은 사람들도 대접할 것이다. 지갑을 열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입이라도 닫아야 중간은 간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 기록하자
한 어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집안에서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모이는 후손이 달라진다. 살아계실 때에는 설이나 추석 혹은 제사에 후손들이 모이지만, 돌아가신 후에는 점차 관계가 소원해진다. 각자 살길이 바쁘고, 새롭게 유지해야 할 관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마을에서 어른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역사에 관심을 갖고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일을 정리하고, 집안에 쌓인 기록물을 정리해야 한다. 옛날 사진이 있더라도 젊은 사람들은 사진 속의 인물을 잘 모르고, 어떤 상황에서 찍은 것인지를 모를 수 있다.
지금이라도 기록하고 정리하여 역사를 남기자. 자신과 가족조차 기억하지 않는 것을 누가 기억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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